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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귀비와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

홍기만 - 정우 2019. 6. 29. 18:16

☞엄 귀비와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


민비가 죽은 후부터 고종과 함께 지낸

여인은 순헌황귀비 엄 씨였다.

그녀는 엄진삼의 큰딸로

철종 5년(1854년)에 태어났다.

8세때 입궐하여 시위 상궁이 되었다.

그녀는 민비에게 쫓겨났다가 민비가

왜놈에게 살해 당한지 5일 만에

고종의 명으로 재 입궐했다.


그녀는 아관파천 했을 때 고종의 시중을 맡았다.

당시 정화당 김씨가 계비로 초간택된

상태였지만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정화당 김씨는 처녀로 지내다가 47세 때

1917년 조선총독부의 정략에 의해

입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 의해 입궁한 그녀는 

고종의 얼굴을 한번도 볼수가 없었다.

다만 고종이 죽자 고종시신과 함께있었다.

이때 귀비 엄씨의 소생 이은(영친왕)은

이미 23세 여다.


아관파천했다가 1년 만에 궁궐에 돌아온

고종과 엄씨는 같은 해인 1897년 10월 

황제 즉위식을 갖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선포하면서

왕후를 황후로, 왕세자를 황태자로 개칭했다.

고종의 호칭도 전하에서 페하로 바꾸었다.

이무렵 엄씨는 귀인으로 책봉되었다.

3년뒤인 1900년 8월 아들 은이는 영친왕으로

봉해 지자 순빈으로 책봉되었다.

이듬해 1901년 10월 빈에서 비로 승격되어

고종의 계비가 되었던 것이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한 뒤 엄씨의 아들

영왕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이분이 바로 영친왕인데 비운의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다.

이때 엄귀비는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엄 씨는 1906년 진면여학교를 세울 때

거액을 내놓아 사실상의 설립자였다.

또한 양정학교 설립 때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11년 58세의 엄씨는 장티푸스로 죽었다.

묘는 서울 청량리 홍릉의 영휘원에 있다.


귀비 엄 씨가 낳은 10살짜리 황태자 이은은

1907년 12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볼모로 잡혀 갔다.

당초엔 매년 한번씩 귀국할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1910년 순종이 페위하자 황태자는 황세자로

격하되었고, 1920년 일본 황실 정책에 따라

일본의 황족 딸 마사코와 정략 결혼했다.


1926년 순종이 죽자 형식상 왕위 계승자가 되어

이왕이라 했지만 일본에서 귀국하지 못했다.

그는 일본에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을 거쳐 육군 중장을 지냈다.


1963년 11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주선으로 국적을 회복하고 부인 이방자와

함께 귀국 했다.

그후 이왕은 지병으로 1970년 74세로 죽었다.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에 묻혔으며,

1989년 4월 30일에 죽은 이방자 여사도

함께 묻혔다.


비운의 대한민국 마지막 영친왕 이은


정 우 -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