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30여녀전 일 입니다.
도시복(1817~1891)이란 사람은,
조선 철종 때,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 마을에 살았던 실존 인물로
본관은 성주(星州)입니다.
그의 효성에 대한 기록으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도씨는 집이 가난하였으나 효성이 지극 하였다.
숮을 팔아 생게를 유지하며, 고기를 사서
어머니 드실 반찬에 빠뜨림이 없었다.
하루는 시장에 갔다가 늦어서 황급히 집으로
돌아 가느데,갑자기 솔개가 나타나
어머니 드실 고기를 낚아 채 갔다.
도씨가 슬피 울면서 집에 와 보니 ,솔개가 이미
뜰에다 고기를 던져 놓고 가버린 뒤였다.
또 하루는 어머니가 병이 들어 때아닌 홍시를
찾으셨다. 도씨가 감나무 숲을 이리 저리 헤매느라,
해가 지는 것도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더니, 여러차례 앞 길을
가로막고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한다.
도씨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니, 순식간에
100여리 나 되는 어느산골촌에 이르러,
남의 집 문앞에 내려 주인을 찾아 하룻밤,
유숙 하기로 하였다.
얼마 안 있어 주인이 제사 밥을 차려 주는데,
홍시가 있었다.
도씨가 기뻐하며 감의 내력을 묻고,
또 자신이 그곳까지 오게 된 까닭을 말 하였다.
주인이 답 하기를 "돌아가신 선친께서 감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해마다 가을에 감200개를
골라 굴속에 저장해 두지만,5월이 되어도
상하지 않는 것은 7.8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완전한 감이 50개나 되는지라
마음 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더니, 이는 하늘이
그대의 효성에 감동 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감 스무 개를 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도씨가 사례하고 문 밖을 나서니, 호랑이가
아직도 엎드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 등에 올라 타고 황급히 돌아 오니
새벽 닭이 울었다.
훗날 어머니는 천명(天命)을 누리시고,
돌아 가시자 도씨는 피 눈물을흘렸다 한다.
이와 같이 "지성이면 감천" 일란 말이
허구가 아님을 알수 있읍니다.
오늘날 예천군이 1980녀대 말,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 형태로 복원해,
현재는 효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담니다.
좋 은 글 ,孝 行 편 에서
-- 靑 松 --